본문 바로가기
인생 이야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조선 개국

by 옆차기왕 2023. 1. 4.
반응형

경복궁-근정전의-모습
[출처 : Pexels - Luna Groothedde]

고려말기의 어지러운 정국과 조선의 태동

고려 말 중국 명나라의 무리한 공물 요구 및 철령 이북 땅을 차지하겠다고 고려를 위협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명은 철령 이북 땅이 원의 소유였으며 당연히 원을 몰아낸 명의 소유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명이 고려를 속국으로 삼는다는 의도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선 건국 세력들은 새로운 왕조 개창이라는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대외적으로는 친명 정책을 추진하며 내부적으로는 권문세족 중심의 권력 구조를 개편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개혁 성향의 신진 사대부들은 외적과의 전쟁보다는 국내 문제 해결 및 경제 활성화를 위한 토지제도 정비 작업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보수 성향의 기성 관료들은 강력한 무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북진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렇듯 의견 대립이 팽팽히 맞서고 있던 가운데 마침내 최영을 중심으로 명의 전초기지인 요동을 정벌하자는 주장이 나왔고 고려의 우왕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1388년 4월 우왕은 최영을 팔도도통사로 삼고, 좌군도통사에 조민수 그리고 우군도통사에 이성계를 임명하고는 드디어 요동 정벌을 감행했다. 

이성계와 조민수가 이끄는 5만 대군이 전열을 가다듬고 강을 건너 요동성을 정벌하기 위해 위화도에 당도하였다. 하지만 장마로 인해 압록강이 범람하여 더 이상 진격하지 못하고 발이 묶이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성계는 요동성을 공격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우왕에게 요동 정벌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상소(사 불가론)를 올리게 된다. 

하지만 우왕과 최영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정벌을 독촉하자 이성계와 조민수는 위화도 회군을 단행했고 곧바로 우왕을 폐위시키고 창왕을 왕위에 앉혔다. 창왕 또한 이성계 일파에 의해 폐위당하고 뒤를 이어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을 즉위시킨다. 이 과정에서 창왕을 옹립했던 조민수가 실각하게 되고 이성계 일파는 고려 조정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1392년 7월, 이성계는 정도전, 남은, 이방원 등의 추대에 힘입어 공양왕을 내쫓고 왕으로 등극하고 새 왕조를 열었다. 이렇게 하여 500여 년 동안 지속된 고려 왕조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위화도 회군에 대한 소회

조선 개국의 시발점이었던 위화도 회군은 과연 정권 장악을 위한 이성계의 쿠데타였을까, 아니면 강대국인 명나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실리주의적 선택이었을까? 결국 고려의 상황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 욕망을 자극했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반응형

댓글